“어쩌자고 여기다 마을을 짓는가? 여긴 사방이 뚫린 들판 한복판인디.” 연대 미상의 어느 날, 남원 행정마을. 근방을 지나던 스님 한 분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배산임수 지형은커녕, 휑한 들판에 집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 하지만 스님의 말을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후 수 년 동안 마을에는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스님의 말을 안 들은 탓일까? 이후 어느 날, 이번엔 도사 한 명이 마을을 지나가다 말했다. “마을 북쪽에 성을 쌓으시오. 그리하면 액운을 막아줄 것이니.” 전과 달리 사람들은 그 말을 따랐다. 차마 성(城)은 쌓기가 힘드니 나무라도 심어 숲을 만들자는 데 동의했다. 그때 심은 서어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 오늘날 서어숲마을이 됐다. 숲이 생긴 후부터는 이곳에서 까닭 없이 죽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영화 '춘향뎐' 촬영지 서어숲마을과 서어나무의 첫인상
서어숲 곳곳에 숨어 있는 연리지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앞서 소개한 것은 남원 서어숲마을의 유래다. ‘서어’는 지명이 아니라 나무 이름이다. 서어나무. 잘 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생소한 사람들도 많으리라. 서어나무에 대한 인상을 이야기하자면 상의를 벗은 청년 같다. 다소 색정적인 표현을 쓴 것은, 나무의 건강한 외관 때문이다. 서어나무 기둥의 퍼석한 목피(木皮)는 남성의 두터운 피부 같고, 울뚝불뚝 튀어나온 줄기는 금방이라도 뚫고 나올 힘줄 같다. 이 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하는데, 정작 자작나무와는 사뭇 다르다. 자작나무는 우선 색깔부터 하얗고 가냘파 바람 불면 쓰러질 여자 같지만, 서어나무는 불어오던 바람도 움켜쥘 만큼 튼튼한 남자같이 생겼다. 참 잘생긴 나무다. 남성미 넘치는 이 서어나무의 집단 군락지에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이 촬영됐다. 영화 속에서 뽀얀 얼굴의 앳된 춘향이 그네 타던 곳, 바로 여기 서어숲마을이다.
그런가하면 서어숲마을은 '제1회 전국 아름다운 숲 대회'에서 영광의 1위를 차지한 마을이다. 서어나무와 느티나무들 총 100여 그루가 사이좋게 모여있고, 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여름이면 마을 주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숲으로 와 평상에 누워 쉬거나 수박을 잘라 먹는다. 전국에 송림이나 죽림은 많지만 서어숲은 흔치 않기에 더욱 값진 보물이다. 뒤편에는 지리산이 아빠 품처럼 감싸고 있어 아늑함마저 느껴진다. 근처 광한루원이나 춘향테마파크 등을 방문한 여행자들이라면 차로 1시간쯤 걸리는 서어숲을 꼭 구경해보자. 여느 마을에서는 보기 힘든 서어숲의 매력에 압도될 것이다.
이 봄, 서어숲 연리지 곁으로 걸어 들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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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의 고장, 남원. 남원에서도 <춘향뎐>이 촬영된 곳, 서어숲마을. 부부의 날 여행지로 이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뿐이 아니다. 연리지를 아는가? 떨어져 자라던 두 나무가 사이좋게 불어버린 것을 두고 연리지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연리지는 사이좋은 부부를 상징한다. 이러한 연리지가 서어숲마을에는 여러 그루 있다. 부둥켜 안 듯 둥치끼리 끌어안은 연리지. 무릇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장한가’ 한 구절이 떠오른다.
원컨대 하늘에서는 비익조로 짝을 짓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했지요
암컷과 수컷이 눈과 날개를 각각 한 개씩 갖고 있어 짝을 지어야만 날 수 있다는 상상의 새, 비익조. 그리고 서로 다른 뿌리를 갖고 자라 몸이 붙어버린 연리지. 그야말로 사이좋은 부부를 잘 빗댄 구절이다. 부부의 날 서어숲마을에 가서 연리지를 만져도 보고, 끌어안아 보자. 그리고 부부의 연에 감사하며 오랜 사랑을 다시금 고백해보자. 때마침 지금 남원은 춘향제로 한창 뜨겁다. 서어숲에서 곧장 걸어가면 남원의 젖줄 주촌천이 흐르니 노을질 무렵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
마을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서어숲. 이곳에서 신비한 연리지를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여봅시다! 없던 낭만이 새록새록 생겨날 테니까요!
글 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19년 05월 16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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